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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일지

족장일지38 (누적 40공수)

 

 

 

 

1공수. 맑음.

 

 

오전에 LNG선 엔진룸 곳곳에 족장 설치 작업을 했다.

 

팀장님에게 파이프 자르는 법을 깨지면서 배웠다.

 

3m 핸드레일 파이프를 반으로 잘라 1.5m 두개로 만들어 오라고 하길래

 

화기에서 일했을 때 글라인더가 생각나

 

옆에 있던 다른 작업자에게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도장 아줌마 칼을 빌려 자르려고 했다.

 

그런데 두둥.

 

팀장님이 나타나 바닥에 나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핸드레일을 넣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딱 길이의 반을 재서 넣고

 

파이프를 잡고 누르면서 휘어보라고 시켰다.

 

잡고 거의 누으면서 휘게 만들었다.

 

다시 폈다가 휘고 반복해서 하니 팅하는 소리가 들려

 

꺼내라고 했다.

 

그런 후에 잡고 왔다갔다 몇번 하니 파이프가 끊어졌다.

 

이렇게 파이프를 자르는 구나...

 

주변에 다른 작업자들 구경하는데

 

호통소리가 쩌렁쩌렁 겁나게 혼내면서

 

결국은 하나를 또 가르쳐준 셈이다.

 

 

오후에는 안벽 쪽으로 가서 다른 팀 해체 작업을 도와준 뒤

 

다시 LNG선으로 와서 닭장에서 해체를 했다.

 

마지막에는 팀장님과 단둘이 특도선을 돌아다니며

 

핀클립과 하카 남은 게 있나 찾아보고 수거했다.

 

팀장님과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어제 숙제 내준 L블럭/T블럭을 물어보고

 

대답하자 돌아다니면서 배 내부의 각종 지명을 알려줬다.

 

워크샵, ECR(Engine control room), 기어룸, 화이어룸 등등..

 

 

팀장님은 낚시를 좋아한단다.

 

왜 좋아하는지는 혼자서 낚시 하나에만 집중해 잡념을 떨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좋기 때문이란다.

 

고기를 낚고 못 잡고는 사실 중요하지 않고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고 한다.

 

근데 부수적으로 고기가 딸려오는 2초, 그때를 놓치지 말고 시위를 당겨줘야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쾌감은 정말 짧지만 이루말할 수 없이 강하다.

 

도박의 속성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나는 선물옵션 매매를 떠올렸다.

 

돈을 벌고 안 벌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낚시하는 6시간 처럼 장이 열려 매매하는 6시간이

 

그 시간만큼은 매매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행복했다.

 

거기다 돈까지 벌면 미치게 만들었다.

 

추세를 먹었을 때의 짜릿함.

 

하지만 한탕주의와 빌린 돈에 의한 시간적 압박은

 

스스로를 자꾸 파멸의 길로 몰아갔다.

 

끝없는 추락.

 

여기가 바닥인 줄 알았건만

 

한층 한층 계속 내려갔다.

 

 

팀장님과 조금 친해진 것 같다.

 

언젠가 한량처럼 같이 낚시를 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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